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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 문화재

여주에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제간공 권규 묘역 전경

제간공 권규 묘역
권규(1393~1421)는 조선 세종대(世宗代)의 인물로 본관은 안동, 자는 평윤(平允)이다. 대학자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아들로 태종의 제3왕녀 경안궁주(慶安宮主)와 혼인하여 길창위(吉昌尉)에 봉해졌다가 후에 길창군(吉昌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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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석조 사진

여주 고달사지 석조
고달사지는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일대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형성되었던 대규모 사찰이었다.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당대 사찰의 규모를 알려주는 많은 석조유물들이 남아있다. 고달사는 764년(경덕왕 23년)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며, 다만 전하는 기록과 사지에서 출토되는 유물들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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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홍진 영정 사진

인재 홍진 영정
홍진의 초상화이다. 홍진(1541∼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왕을 모시고 피난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돌려서 왼쪽 얼굴을 그린 초상화이다. 관모를 쓰고 구름무늬가 있는 단령을 입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모란과 공작새 무늬가 수놓아진 흉배를 하고 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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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이포리 옹기가마 사진

여주 이포리 옹기가마
여주 이포리 옹기요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37호로 지정된 옹기장(甕器匠) 김일만의 작업장에 있는 것으로 조선말기부터 내려오는 3기의 전통가마이다. 제일 큰 것은 일명 ‘대포가마’라하며, 두번째 것이 일명 ‘시루가마’, 그리고 제일 작은 것이 일명 ‘작은 대포가마’ 혹은 ‘반오지가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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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보통리 해시계 사진

여주 보통리 해시계
조선 인조 때 판서를 지낸 조석우가 지은 43칸 집의 안채 돌계단 옆에 놓여 있는 해시계이다. 해시계를 처음 만든 것은 조선 세종 16년(1434)으로, 왕의 명을 받은 장영실 등의 과학자들이 태양의 일주운동을 이용하여 그림자의 방향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실용화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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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장 묘역 사진

민진장 묘역
민진장(1649~1700)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이다.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민정중의 아들이자 우암 송시열의 문인(門人)이다. 할아버지 민광훈(閔光勳, 1595~1659), 아버지 민정중과 함께 삼대(三代)가 연속으로 문과(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고, 정치적으론 노론(老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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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상교리 고려석실묘 사진

여주 상교리 고려석실묘
고려시대의 석실분으로 북내면 상교리 산 46-1에 해당되는데, 고달사지의 뒷산에 위치한다. 유적은 국보 제4호인 고달사지 부도에서 산능선을 따라 500m 정도 오르면 보호철책 내에 정비되어 있는데, 무덤 서쪽에는 연도폐쇄석이 놓여져 있다.이 고분의 발굴작업은 1983년 11월~12월 한양대박물관 발굴단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하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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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매룡리 고분군 전경

여주 매룡리 고분군
여주를 대표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일 뿐만 아니라, 경기지역에서도 가장 대규모이다. 더 나아가 한강유역의 신라 고분군 중에서 이 고분군은 충주의 누암리 고분군과 함께 신라의 한강유역진출과 그에 따른 점령지역 통치방식을 연구하는 고고학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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